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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orteD

음악에 기억을 담다

길을 가는데 불현듯 쇼스타코비치의 재즈 모음곡 중 왈츠2가 떠올랐다.
이 음악은 그리 좋은 기억을 담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씁쓸한 맛이다.
2004년 그 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싶은 생각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인생의 기록은 기록, 음악파일은 여전히 가지고 있고 지울 생각은 없지만
내 의지로 다시 찾아 들을 일은 없지 않을까.
그러다 가끔 어디서 흘러나오는 것을 듣게 되겠지.

사실 기쁜 기억이라는 것은 휘발성이 강해서 머릿속에 강하게 남지 않는다.
아 그 때 진짜 좋았다, 정도로만 퇴색되어 기억할 뿐
특유의 감정과 상황 같은 것은 쉬이 사라진다.
boyS likE girlS의 thE greaT escapE는 석사 졸업날 들은 곡이다.
그 날 본부 앞 계단으로 걸어내려 가면서
한 고비 넘겼구나 두 고비 넘어갔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흐뭇하게 들었었다.

Pe'z의 blacK skylinE이라는 곡이 있다.
같이 레이드를 하던 넴모가 즐겨듣는 곡이었다.
그 당시 그의 홈피에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듣는다고 되어 있었는데
지금도 그럴지는 모르겠다. 사람은 변하니까.
이 곡은 aciD jazZ로 분류해야 하는 건가?
레이드 하던 기억을 떠올리는 곡은 아니다. 그 사람을 생각나게 하는 곡.
오히려 레이드를 떠올리게 하는 음악은 라그 둥지 bgm이나
rhapsodY oF firE의 emeralD sworD이다.

기억은 정말 예기치 않은 순간에 그 곡이 흐르면서 담기게 된다.
대학원 탈락 발표 다음날 학교를 가면서
서태지의 zerO를 들었다.
-엄마 내겐 이 삶이 왜이리 벅차죠
요즘도 벅찬건 마찬가지지만.

좋은 게임 bgm은 그런 면에서 꽤 유리하다.
글라도스의 맑은 기계 소리를 들으면 자동적으로 포탈이 떠오르고
firsT ruN, seconD ruN, gooD eveninG narviK같은건 테일즈위버.
바로 그 게임을 연상시키게 하는 음악이 되기 때문이다.

다음의 어떤 기억이 어디에 담길지는 모르겠다.
전적으로 그것은 우연의 산물이다.
어떠한 일이 있을 때, 어떠한 음악을 듣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생겨야 하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