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떤 게임을 하든 스토리를 중시합니다.
FPS나 아케이드 계열의 장르에서도- 부실한 스토리라도 행동의 당위를 위해서 필요하니까요.
물론 그러고 나서도 스토리를 너무 허접하게 만들어놔서 개연성이 약하다,
이러면 좋은 평가를 주지를 않죠. 어쨌거나 몰입이 안됐으니.
스토리의 기준에서 본다면 snipeR elitE V2는 좋지 않습니다.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플롯이 굉장한 것도 아니고, 주인공이 매력적인것도 아닙니다.
전 미션을 통틀어 여캐라고는 하나도 안 나오는- 하긴 배경이 그런데 나올수가 없죠.
주인공의 미션 나레이션, 조금씩 나오는 컷신의 대화, 그리고 마지막 미션 끝나고 나서의 대사.
-I'm the first soldier of the cold war. (정확한 대사는 아닙니다. 문장을 도치 후 결합시킴)
낮은 톤의 무미건조한 발성.
주인공은 보편적 군인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universaL soldieR라는 개념이 있는데,
제가 정확하게 설명할 능력은 안됩니다만, 어쨌든 거기에 거의 정확하게 부합해요.
대신 몰입감을 어디에서 주느냐, 하면 스나이핑이라는 행위 그 자체에서 줍니다.
제 경험의 문제겠지만, 스토리, 플롯이 아닌 곳에서 이 정도의 몰입감을 구현한 게임이 잘 없어요.
스토리가 안되면 다른 요소에서라도 충분히 몰입감을 제공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잘 안되는 게임이 대부분이라는겁니다.
액션 게임의 타격감은 몰입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보통 이 타격감을 무엇으로 구현하느냐, 하면 시각적 이펙트, 모션 자체, 효과음으로 구현하죠.
패드를 이용한다면 진동까지 이용해서, 냄새와 온도를 제외한 3개의 감각을 최대한 적절하게 자극합니다.
그런데 이 요소를 스나이핑에 적용한다면?
격발시 소리, 맞은 적의 모션, 끝? 의외로 저격 행위 자체에 몰입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snipeR elitE는 전작에서부터 이를 슬로우모션과 킬캠으로 구현합니다. 매우 효과적입니다.
그리고 적이 쓰러지면 얼마나 멀리에서, 사인이 무엇인지를 간략하게 보여줍니다.
150미터, 헤드샷, 같이요.
킬캠에서는 뼈 및 내부 장기가 관통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약간 그로테스크하긴 합니다. 전 이 부분에선 전작이 좀 더 낫지 않나 싶기도 해요.
내부를 보여주는 것만 빼면 전작과 동일합니다.
다리 폭파 컷신이 꽤 다이나믹하게 나와서 찍어봤구요.
연료캡을 제대로 저격하면 땅끄도 잡습니다.
V2로켓도 이렇게,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총알이 연료주입구에 스파크를 튀겨서 날려버립니다.
전작도 그랬지만, snipeR elitE는 최고 난이도로 해야 그 맛이 사는 것 같습니다.
대체로 FPS게임이 난이도가 낮다면 그냥 모든 게임이 무쌍이 되죠.
내가 쏘는건 다 맞고 적이 쏘는건 다 빗나가고.
대신 순발력을 요하는 FPS게임의 계열에서는 난이도를 올리면 제가 따라가기가 너무 벅찹니다.
모던워페어 1을 그렇게 했다가 너무 힘들게 깨서 그 다음부턴 적당히 하고 있거든요.
그러나 잠입&스나이핑이 컨셉인 이런 게임은 그런 피지컬적인 능력이 덜 필요하고,
난이도를 올릴수록 더욱 사실적인 게임이 됩니다.
탄의 궤적에 중력과 바람이 추가되고, 적이 엄폐를 기가 막히게 하고, 기관총 엄호사격도 어우-_-
주변이 시끄러울때 격발을 해서 눈치를 채지 못하게 하고,
근거리에서는 소음기 달린 권총을 사용하고.
플레이타임 16시간이니 깔끔하게 했네요.
아마 20시간을 넘어갈 정도였으면 지겨워지기 시작했을겁니다.
액션이 제공하는 몰입감은 스토리가 주는 것에 비해 시간적 한계가 있으니까요.
코옵이 있긴 한데, 매칭도 시켜주는 것 같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다 싶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