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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vE tO three-acT structurE

오늘 저를 부들거리게 만든 것은 GDC 2014에서 있었던 한 발표 때문입니다.

Death to Three-Act Structure!라는 제목으로, 라이엇의 Tom Abernathy와 MS의 Richard Rouse III가 발표했죠.


http://www.inven.co.kr/webzine/news/?news=106329

http://www.thisisgame.com/special/page/event/gdc/2014/nboard/226/?n=53881


제가 본 한국 기사는 이 두 개 입니다. 사실 이 이외의 웹진들은 가지를 않아서;

인벤쪽이 슬라이드 사진을 비롯해 요약이 좀 더 나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발표의 근거는 꽤 충격적입니다. MS에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게이머들은 게임 플롯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왔어요.

다른 미디어의 내러티브는 상대적으로 잘 기억할 수 있지만요.

또한 스팀 데이터로부터, 엔딩을 보는 게이머의 수가 적다는 것을 제시하고,

이런 상황에서 플롯에 과도하게 신경을 쓰는 것은 비효율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대신 게이머들은 캐릭터는 잘 기억하기 때문에,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죠.


왠지 전문을 들어봐야 할 것 같지만, 공개된 영상을 못 찾았어요.

제목만큼 강한 톤은 아닐 것 같은 생각은 들지만, 어그로를 끌면 낚여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선을 다해서 반대 근거를 제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뭐 여기다 한글로 뭐라고 써봐야 저 사람들이 볼 수도 없겠지만.




1. 일단 발표자 분석을 먼저 해 볼려구요.

Tom Abernathy는 다른 정보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링크드인이든 뭐든 검색하면 떠야하는데

정보가 안 나오는걸 봐선, 경력이 그리 오래지 않은 개발자로 보입니다.

Richard Rouse III는 이전 작품들이 꽤 있습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것은 없지만,

장르는 대체로 FPS, 슈팅, 호러 어드벤처 정도입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건, 이 두 사람은 내러티브가 중요하지 않은 게임들을 개발해 왔다는 겁니다.

저는 발표자의 biaS를 지적하고 싶습니다. 이 두 사람에겐 내러티브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어요.


2. 게이머의 경험이 가장 중요하다는데에는 동의합니다.

3막 구조에는 사형을 내려도 좋습니다. 전체 플롯이 기승전결이든 병병병병이든 뭐 어때요.

게이머는 게임을 읽거나, 시청하는게 아니라 플레이합니다. 타 미디어와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입니다.

나의 결정이 그대로 게임상에서 구현되죠. 이는 상당한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며,

게임 플레이 경험을 유니크한 것으로 만듭니다. 책, 드라마, 영화, 등과는 확연히 다르죠.

음, 예로 모던 워페어 3에서의 노 러시안 미션을 들어보죠.

책이라면, 민간인 학살을 묘사하고, 독자는 읽은 뒤 머리속에서 장면을 상상하고 재구성합니다.

아 이건 독서의 유니크한 경험이죠. 재구성.

영화라면 이 장면을 보여주고 들려줍니다. 극대화하기 위한 기법들도 사용합니다.

최종적으로는 시청자가 수동적으로 이 장면을 받아들입니다. 능동적이지는 않죠.

게임에서는 내가 조작을 해서 그 이벤트를 플레이합니다. 능동적으로요.

민간인 학살을 플레이어가 직접 경험하는 겁니다. 충격의 강도는 다른 미디어에 비해 강하죠.


왜 이 예를 길게 들었냐 하면, 애초에 주어진 경험의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겁니다.

내러티브의 태생적 한계는 그것을 전달하는 미디어의 형태에 있습니다.

책에서는 글로만 전달이 되고, 영화에서는 영상으로 전달이 됩니다.

이미 어떠한 내러티브가 매체에 맞는 형태로 만들어졌고, 수용자는 이를 쉽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게임이라는 미디어는 내러티브를 경험하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다시 노 러시안 미션을 생각해봅시다.

이 미션은 테러리스트가 민간인을 학살했다는 내러티브를 전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마카로프에 의한 반전을 전달하는 도구이기는 합니다만, 오히려 이 미션의 가치는

민간인 학살이라는 '경험'이 전달하는 충격입니다.





실험 참가자들은 게임 플롯을 retell, 다시 말로 하는데 타 미디어 플롯보다 적은 단어를 썼습니다.

이건 기억의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경험을 내러티브로 전환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왜 기억을 못하겠어요. 다만 말을 못하는거죠.

노 러시안을 하고 나서 플롯을 설명하라고 했을 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꽤 훈련이 잘 된 사람입니다.

보통 첫 말이 이래야 더 자연스럽습니다. "와.. 씨X"

내러티브로 만들어진 것을 내러티브로 설명하는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경험을 내러티브화 하는것은 의외로 어렵습니다.

다층적이고 비선형적 구조를 가진 일반 경험을 선형적인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


3. 스팀 데이터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숫자가 주는 힘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저도 업적질을 힘 닿는데까지 하면서 느낀 거지만, 한 게임의 엔딩을 보는 사람은 의외로 적습니다.


  • 워킹데드(The Walking Dead: Season 1, Episode 1) - 66%
  • 매스 이펙트 2(Mass Effect 2) - 56%
  • 바이오쇼크 인피니트(BioShock Infinite) - 53%
  • 배트맨: 아캄시티(Batman: Arkham City) - 47%
  • 포탈(Portal) - 47%
  • 매스 이펙트 3(Mass Effect 3) - 42%
  • 워킹데드(The Walking Dead: Season 1, Episode 5) - 39%
  • 엘더스트롤5: 스카이림(The Elder Scrolls V: Skyrim) - 32%
  • 보더랜드 2(Borderlands 2) - 30%

  • 발표에서 제시된, 엔딩을 본 게이머의 비율입니다. 하나하나 변명을 달아 볼게요.

    스카이림은 유명하죠? 내러티브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픈월드와 모드의 힘이죠.

    이러이러한 것을 해 보고 싶다, 그러면 해당 모드를 설치하고 스카이림을 뛰어다닙니다.

    그렇게 얻는 경험이 스카이림의 동력이에요. 아마 발표자들의 입맛에 딱 맞는 게임 아니었을까요.

    내러티브는 최소화하고 게이머들은 각종 경험을 얻는.

    거기다 일단 애초에 내러티브가 뛰어나지도 않은데, 저 같은 바닐라 플레이어가

    280시간이나 썼습니다. 메인 퀘스트, 4대 팩션, 던가드, 드래곤본까지요. 너무 길었습니다.

    엔딩을 보기까지의 플레이 시간이 너무 길다는 것은 큰 단점입니다.

    모든 게이머가 저처럼 인내심이 대단하지도 않고,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도 않습니다.


    보더랜드는, 저거 멀티가 메인인 게임 아니었습니까? 역시나 플롯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머지 게임들은 그래도 다소 엔딩률이 높죠. 스토리 좋기로 유명한 것들이네요.

    문제는, 좀 전에 말했듯이 시간입니다.

    워킹데드는 안 해봐서 모르겠구요. 나머지는 엔딩을 봤거나 아직 플레이를 못 했습니다.

    대체로 플레이타임 20~40시간이 들어가요. 인내심이 부족한 게이머들에게는 너무나 긴 시간입니다.

    재밌어서 시작했지만 금방 질려버리는 거죠.

    이렇게만 본다면 발표자들의 견해가 맞습니다. 엔딩 보기는 의외로 힘든 일이고,

    따라서 스토리보다 다른 재밌는 경험을 제공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렇죠.


    포탈은 이 주장에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플레이타임은 굉장히 짧습니다. 1은 5-6시간, 2는 10시간 정도면 엔딩을 봅니다. 질리기 전에 끝나죠.

    포탈 건을 이용해 공간을 연결하고 퍼즐을 풉니다. 재밌습니다.

    별 것 아닌 스토리도 흥미진진합니다.

    그런데 엔딩 본 사람은 적어요. 왤까요?


    제가 가진 자료는 포탈2의 통계밖에 없네요.

    스팀에서 봤을 때, 포탈2 소지자 중 게임을 시작한 사람, 즉 첫 업적을 획득한 사람은 72.9%입니다.

    뭐, 사 놓고 아직 못했거나, 사는 것 자체로 만족하는 사람 등등이 있죠. 저 수치는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엔딩 업적을 딴 사람은 43.7%입니다. 이건 위에서 제시된 결과와 일치하죠.

    이게 이상한 점입니다. 구매자 중 30%가, 포탈2를 시작했지만 엔딩을 못 봤습니다.

    고작 10시간을 플레이하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충분한 경험을 했으니 그만두었다? 애초에 10시간도 플레이하지 않았다는건 경험조차 못 한겁니다.

    게임은 집중을 요구하는 미디어입니다.


    포탈은 엔딩을 보는 것이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플레이시간이 짧고, 밀도있는 경험을 제공하고, 훌륭한 내러티브를 가지고 있습니다. 쉽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한 사람 중 거의 절반 가량이 중도에 멈춰섰다는 것은 무엇이 문제인걸까요.

    메타크리틱 95점을 받은 게임이 재미없어서 절반이 그만둔다? 이건 말도 안되는 소리죠.

    메타크리틱 98점짜리 스카이림도 저 모양인데요 뭘.


    유저층이 다르다는 관점으로 접근해 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과격하게 말하자면, 전 포탈2의 통계로부터 구매자의 40% 정도는 게임을 하지 않는 허수로 보고싶네요.

    허수와 실수는 나눠서 봐야 하지 않는가, 즉 허수의 게이머를 위해 내러티브를 약화시키는건

    굉장한 패착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4. 스토리 약화가 개연성 약화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한건지 모르겠네요. MS의 실험요약 3번은

    게임을 스토리때문에 하는 사람은 플레이가 내러티브, 즉 스토리 전달을 중시했다고 기억하는 반면

    게임 스토리를 무시하는 사람은 내러티브가 플레이에 맥락을 제공했다고 기억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문장 되게 못썼네요. 바로 이해가 안됩니다.)


    이들은 게이머가 기억하는게 스토리가 아닌 캐릭터와 그 캐릭터가 관련된 이벤트이니

    플롯에 힘을 덜 쓰고 좋은 캐릭터를 만들라고 하는데,

    역설적으로 이 이야기는 적절한 스토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라는 겁니다.

    배경이야기 같은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캐릭터에 개연성을 부여할 수 있으면 됩니다.

    사실, 좋은 내러티브는 거기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잔가지는 다 쳐 내고 핵심적인 이야기만 전개하는 것.




    제 나름의 결론은, 여전히 내러티브는 주효하다는 것입니다.

    연출과 게임디자인이 그 해결책이 아닐까요.

    캐릭터성과 플레이어의 경험이 더욱 중요한 요소라는데에는 동의를 하나,

    허수에 의해 왜곡된 엔딩 통계와, 게이머의 기억 재현이 완전치 않은 것을

    내러티브의 중요도를 격하하는데 이용할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요즘의 시장은 RPG계열의, 내러티브가 강해야 하는 게임들이 많지 않죠.

    그건 환경이 모바일 디바이스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 이유일수도,

    시대의 흐름이 우연히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생각 정리하며 쓰느라 꽤 많은 시간이 들어갔네요.

    일단 포스팅을 완성...은 했는데, 불안한 부분이 있습니다.

    별 것 아닌 당연한 소리를 어그로 끌며 전 세계에 'plotS arE overrateD'라는 기조로 선언해버린 짓이 아닌가.


    애초부터 발표자들이 내러티브와 플롯을 제대로 구분하지 않고 막 쓴 것 같아서요.

    저도 그래서 막 쓰긴 했는데- 이 talK의 의도는 잘 생각해보면 내러티브는 약화시키고 플롯은 강화시키라는 말과

    일맥상통하거든요. 그리고 그건, 진짜로 작가들의 기본 수칙입니다.

    (설마 내가 하루종일 거하게 낚인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