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반사회적인 사상이 행여나 튀어나올세라
세월호 사건 이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 좀 더 거슬러 올라가자.
내 말은 이해받지 못하는 것들임을 깨달은 이후로 나는 말문을 닫았다.
남의 말은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보통 내 읊조림의 대부분은 내 이야기였고,
교묘하게 편집되고 적절히 감추어진 내 주변의 이야기였다.
나는 그저 내 이야기를 그런 식으로라도 드러내는 것이 좋았다.
일종의 오픈소스. 다 드러내 놓으면 적어도 그걸 본 사람과는 그 다음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건 아니더라고. 보지 않은 사람, 대충 보고 곡해하는 사람, 오해하는 사람,
나는 그래서 말문을 닫았다. 그랬던 것 같다.
적어도 온라인에서 나는 수다스러웠었다. 어쨌거나, 그렇게 했었지만
내게도, 그걸 제대로 본 사람에게도,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도, 아무런 도움 또는 이득이 되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말하는 것은 어려워졌다.
발표는 계속해서 검열되었고, 여러 개의 그룹의 이야기는 서로 섞여서는 안 되었다.
내 관심사는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내 이야기는 그래서 줄어들었고,
이쪽의 이야기는 저쪽에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니 말할 수 없고,
다른 이야기는 다른 또 어딘가를 자극할 수 있기 때문에 말할 수 없었고,
저 이야기는 내가 정식으로 들은 것이 아니라 흘려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하면 그나마 일에 대한 것 뿐이었다.
나머지는 이해받지 못하는 발화에 지나지 않았다.
일기라도 써야하나. 80자로 남기는 연구로그 외에.
너무 답답해서. 뭐라도 써야했다.
단순한 바이트 낭비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L의 이야기가 오늘 하루종일 날 심란하게 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누구와 나눌 수 있는 것인가? 아니다.
쉽게 얘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떠벌릴 것도 아니며, 비난할 것도 아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는 사건이 아닌가.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술 한 잔 할 수 있으면 다행일 정도겠다. 위로는 할 수 있겠지.
...옛날같았다면, 굉장히 가벼운 마음으로 혼내줬을텐데. 이젠 우리는 너무나 멀어졌고 너무나 커 버렸다.
이럴때마다 03년이 생각나는 법이지. 추억은 억천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