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야기는 비일상을 기반으로 한다.
반복되고 특별한 고저와 흐름이 없는 일상은 이야기에 적합하지 않다.
일상물이라는 것도 따져보면 일상중에 일어난 소소한 비일상 에피소드에 의존한다.
한편 그 일상도 사람에 따라 매우 다른 것이라
누군가의 10년치 모험거리도 다른 누군가의 짧은 일상에 불과할 수 있다.
시리아 내전이 우리한텐 엄청난 비일상이지만 거기는 일상이잖아.
생사가 오락가락하지만.
일상이 별 거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로 풀어내기에 적합하지 않을 뿐이다.
일상이 사람마다 다른 것처럼 비일상도 역시 그러하다.
시리아 얘기를 좀 더 풀어보자. 거기에서 10년 전의 다마스커스 이야기는
판타지에 가까운 비일상이 될 것이다.
여기에서 개념을 살짝 꼬아본다.
일상의 반대 개념으로, 상대적으로 존재하는 비일상은
단단한 일상을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다.
일상이 굳건할수록, 반복적이고 따분하고 흐름이 없을수록
비일상이 가져오는 파격, 일탈, 신선함, 등의 효과가 크다.
물론, 유동성이 풍부한 삶도 일상이 될 수 있다.
전장을 옮겨다니는 용병팀이 그럴 것이고, 장돌뱅이의 역마살이 그렇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일상은 그 생의 기반이기 때문이다.
의식주를 영위하기 위한, 또는 그것을 준비하기 위한 삶.
그러나 일상이 불안하여 거기에서 비일상을 구분해 낼 수 없다면,
비일상적 이야기가 끼치는 효과는 미미하다.
현실이 불안할 때 우리는 이야기를 찾을 때가 아님을 안다.
어떻게든 고정을 시켜야 할 때임을 안다.
이 때의 이야기는 자칫 현실과 섞여버리기도 하지.
-그렇게 아름다운 비현실이 깊게 다가오지 않았다.
여전히 나는 새로운 이야기에 굶주려 있으나, 지금은 아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게임은 스토리가 약한, 또는 이미 해 본 게임의 업적달성용 반복 정도.